며칠 전, 마음이 복잡하고 숨이 턱 막히는 듯한 기분에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었다.
특별히 계획이 있던 건 아니었다. 그저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조용한 곳에서 나를 다잡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알게 된 곳이 바로 창원 장수암이다.
이름부터 어떤 오랜 시간과 정갈한 기운이 느껴지는 이곳은,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도 멀리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절이었다.

장수암은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위치해 있다. 도심과는 조금 거리가 있지만, 오히려 그런 외진 듯한 위치가 마음을 더욱 끌었다. 도착하기 전부터 도로 옆으로 펼쳐지는 나무들과 점점 높아지는 경사길이 설렘을 자아냈다. 봄의 기운이 완연한 길목에는 연초록의 잎들이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고, 창문을 열면 차 안 가득 맑은 공기가 들어왔다.
절 입구에 다다랐을 때는 마치 시간이 느리게 흐르기 시작한 듯한 느낌이었다. 번잡한 소음은 자취를 감췄고, 들리는 건 바람이 나뭇잎 사이를 스치는 소리와 새들의 지저귐뿐이었다. 그 고요함 속에 발걸음을 내딛으니, 마음 한 켠에서 무언가 서서히 풀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장수암은 높은 산자락에 기대듯 자리 잡고 있다. 계단을 몇 개 올라가면 바로 대웅전이 보이는데, 그 앞마당에서 시선을 멀리 두면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바다가 절의 풍경 속에 있다는 건 흔치 않은 경험이었다. 바람은 절벽을 타고 불어와, 조금 차가우면서도 상쾌하게 느껴졌고, 그 바람을 맞으며 바다를 바라보는 순간, 숨이 트이는 듯한 해방감을 느꼈다.
절 내부는 화려하지 않지만 단아하고 고요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오래된 기와지붕과 자연 그대로의 바위, 나무들 사이에 놓인 전각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특히 마음에 들었던 건 주변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그대로 안고 있는 듯한 절의 배치였다. 일부러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오히려 더 큰 위안을 주었다.

대웅전 앞에 앉아 한참을 있었다. 굳이 절을 다니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곳에 앉아 있으니 자연스레 손을 모으게 되었다. 어릴 적 어머니를 따라 절에 갔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하고, 살아오면서 놓쳐버린 소중한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도 됐다.
기도란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일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나를 마주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날 장수암에서의 시간은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말로 다 하지 못한 속마음을 정리하고, 마음속에 무거운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는 시간. 그렇게 한참을 머물러 있었지만,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갔다.

장수암 입구 근처에는 작은 기념품점이 있다. 불교 관련 책자나 염주, 향 등 여러 물건들이 조용히 진열되어 있었다. 상업적인 느낌 없이 절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정갈함이 느껴졌다. 기념으로 작은 염주 하나를 샀는데, 손에 꼭 쥐면 기분이 묘하게 안정되는 느낌이 든다.
기념품점을 지나면 바로 옆에 작은 찻집이 있다. 전통차를 비롯한 다양한 음료를 판매하고 있는 이곳은, 마치 오래된 한옥의 사랑방처럼 꾸며져 있었다. 내부는 나무 향이 은은하게 배어 있었고, 창밖으로는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나는 따뜻한 유자차 한 잔을 주문했다. 진하게 우러난 유자차 한 모금에 마음이 편안해지고, 어느새 눈을 감고 향기를 음미하게 된다.
차를 마시며, 오늘 하루의 시간을 되돌아보았다. 단 몇 시간이었지만, 장수암에서 보낸 시간은 며칠을 쉰 듯한 충만함을 안겨주었다. 공간의 에너지가 사람을 치유한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올라갈 때는 생각에 잠긴 채였던 걸음을, 내려올 때는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옮길 수 있었다. 산길을 따라 내려오는 동안, 하늘은 붉게 물들고 있었고, 바다 위에는 은은한 햇빛이 반사되어 잔잔한 파도 위로 부서지고 있었다.
절을 나와 차에 오르기 전, 다시 한번 뒤를 돌아봤다. 조용히 서 있는 대웅전과 그 너머로 펼쳐지는 바다, 그리고 산속에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까지. 그 모든 것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마치 나에게 “괜찮다”는 말을 해주는 듯했다.

창원 장수암은 단순히 종교적인 장소를 넘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마음의 쉼터 같았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여행지가 아닌, 조용히 나를 돌아보고 싶을 때 찾을 수 있는 곳. 맑은 공기, 고요한 분위기, 바다와 산이 함께 어우러진 풍경 속에서 나는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었다.
누군가는 장수암을 그냥 작은 절 하나로 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그날 그곳에서의 시간이 무척 특별하게 남았다. 복잡한 세상 속에서 가끔은 이렇게 한적한 공간에 몸과 마음을 맡기고 쉬어가는 것도, 참 소중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혹시 지금 마음이 지치고, 어디론가 조용히 떠나고 싶다면, 창원의 장수암을 추천하고 싶다.
특별한 무엇이 있는 곳은 아니지만, 그 조용함과 자연스러움이 오히려 더 깊은 울림을 주는 곳.
나처럼 당신도 그곳에서 작은 위로와 평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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